모래 개수를 계산 하는 사람, 아르키메데스
아르키메데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천재 과학자로, 윗글에 나온 '도르래의 원리' 외에도 '부력의 원리'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적 업적을 남겼습니다. 또 조국 사라쿠사가 로마의 침략을 받자, 아르키메데스는 투석기,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 무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죠. 하지만 사라쿠사는 신흥 강국 로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함락되는데, 그 날도 아르키메데스는 뜰의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기하학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어요. 그러던 중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자 그것이 로마 병사인 줄도 모르고 "비켜! 내 도형이 가려지잖나"라고 말했다고 합니다. 이 말에 화가 난 로마 병사는 아르키메데스를 몰라 보고 그의 목을 쳤는데, 평소 아르키메데스의 학식을 존경하던 로마의 장군이 이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석에 죽는 순간까지 그가 연구하던 도형을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. 죽는 순간까지 연구에 골몰했던 아르키메데스 같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, 헬레니즘 시대에는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.
부력의 발견
아르키메데스는 천문학자 피라쿠스의 아들이었다. 그가 이집트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피라쿠스가 왕에게 아르키메데스를 인사시키러 갔다. 그 때, 왕은 새로 만든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, 아니면 다른 물질과 섞였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. 왕의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아르키메데스에게 부탁을 하자, 아르키메데스는 하루나 이틀 동안 시간을 . 피라쿠스가 아르키메데스에게 목욕이나 하러 가자해서 그들은 목욕탕에 갔고,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 속에 들어갔다. 그러다가 아버지의 목욕탕 물은 넘치지 않는데, 자기의 목욕탕물은 넘치는 것을 보고,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든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("알았다" 뜻의 그리스어)를 외치면서 몸으로 밖으로 뛰어나갔다.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르키메데스를 보고 정신병자라고 놀렸지만, 아르키메데스는 듣지 못했다. 문제를 풀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. 왕에게 간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을 물 속에 넣고 물이 넘친다는 것을 확인했다. 그러고 나서 그는 왕관을 저울에 놓고 금화 몇 개와 숫자가 같다는 것을 증명한 다음 발견해 냈다.
2008년 12월 4일 목요일
모래 개수를 계산 하는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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